일상 Episode 2

돌아오는 길

annelife 2023. 2. 9. 07:00

나의 둘째가 어제 그런다.

"엄마 나 너무 슬픈 일이 있어,
한국에서 온 친구 윌리암이 내일 학교를 이제
안 온데...-"
"왜?"
"한국으로 돌아간데..."
"아... 그 친구에게 한국말로 설명하느라 애썼다며,
아쉽겠다."
"엄마, 한국말을 할 수 있어 좋았는데,
누구와 한국말로 또 이야길 하지? 슬퍼…

- 헤어지는 건 모두가 슬프지. 너만이 아니라...
모두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국에서 돌아온 지 17일
그 날짜도 둘째 때문에 알았다.
그 아이는 우리가 돌아온 날을 세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한국으로 가기 전 날을 세었던 것처럼…
이번 한국 여행은 유난히 그 아이에겐 좋고, 즐겁고,
헤어지기엔 슬픈 여행이였다.

밴쿠버 공항에 내리자마자,
우버 택시를 탔다. 비행기가 생각보다 빨리 도착하자,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에 마음이 더 급했다.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다리를 건너던 중, 모든 차가
스톱되었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
무슨 일일까? 궁금함도 잠시, 경찰차에 막혀 3시간을 꼼짝 못하고 차안에서 기다리는 일은 고역이였다.
다리 위, 자살을 하려는 누군가로 경찰이 이 다리를
막은 것이다.
그 누군가 안타까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화장실을 가야하고, 내일 도시락을 위해
장도 봐야한다는 내 일정이 더 절박해진다.
누군간 이 순간 삶과 죽음에 매달려있는데,
나는 나의 일상을 이어갈 마음에 매달린다.

이번 한국 방문은 계획이 없었다.
봄? 여름 방학? 아니면 가을즘에 한국을 다녀와야지 싶은 계획만 있었다.
그러다 서둘러 처음 겨울에 한국을 다녀왔다.
모든 것이 갑작스러워서, 계획도 없이,
그저 부모님과 최대한 시간을 보내고, 가족 모임에
최 우선이여야지 싶은 마음으로 떠났다.
그리고 지금껏 난 연락을 못했지만,
꼭 만나고 싶다고 소식을 주신 지인,
직접 얼굴을 보고 현재 건강을 확인을 해야만 하는
내 친구들을 만나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부모님이 이사 한 낯선 동네에서,
부모님과 하루하루 일상의 시간을 보내며
세끼 밥 먹기에 열심을, 상냥한 새 식구와 만남도
나름 자연스럽게~ 오랫만에 본 지인은 잊어버린
지난 삶의 의미가 된 순간도 내게 알려 주셨다.
조용히 조언을 주는 친구와는 카페에 종일 앉아
이것 저것 단거를 가득 앞에 두고,
이야길 나누는 기쁨을 누리고,
내 기도 응답의 친구들이 그럼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마주할 수 있어 한없이 감사했다.
10년만에 한국을 방문한 남편과 내 아이들에게
오래전 내가 좋아했던 장소, 거리, 식당에 가서
나만의 기억을 나누고 공유하다 뜻밖에 마음이
몽글거림도 느껴봤다.

돌아오기 며칠 전부터,
하준이가 자다 깨어, 주무시는 할머니 옆에서
울곤 했다. 그 아이는 밴쿠버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슬프다며, 강아지와 함께 할 수 없는게 힘들고,
할아버지에게 무례하게 대답한 게 후회가 된다며,
할머니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결국,
한국을 떠나는 날,
할머니 앞에서 울어, 할머니를 울렸다.

비행기는 거친 바람 덕에 11시간 30분 거리를,
9시간 20분으로 단축시켜 밴쿠버로 도착했다.
그리고 보름,
도착 다음날부터 바로 아이들 학교 등교에
강제 시차 적응을 하며, 나의 한국 방문을 궁금해 하는
이곳, 이웃들의 만남으로 바쁜 2주를 보냈다.
3주 차 내가 이렇게 정신없이 살던 사람이었나?
스스로 웃음이 난다.
그리고 지난 삼일내내, 아이들이 학교만 가면,
침대에 누워버렸다.
내 모든 기운이 다 소진된 느낌.
오늘 좀 덜하다.
비만 내리던 밴쿠버에 오늘 해가 떴다.
그 햇살 덕에 창문을 열고,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고, 가만히 앉아 글을 좀 적는다.
이렇게라도 적으면, 그 시간들이 기억에 남겨지겠지.

헤어짐은 슬프다.
여전히 제대로 울기도, 슬프다 말하기도 어색하지만,
한때 슬픔을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오해해 그 감정으로
나를 힘들게 했지만, 슬픔은 슬퍼서만이 아니라,
좋아서, 아쉬워서, 너무 그리워서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헤어지는 건, 여전히 어렵다.

돌아오는 길, 보고만 있어도 좋다. 맘에 그 길을 담고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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