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Episode 2

9월의 시작 말씀 정리

annelife 2024. 9. 6. 05:15

작은 아이의 아침 등굣길.
"엄마~ , 엄마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몇 살로 가고 싶어?" 이 녀석은 늘 이렇게 뜬금없는 질문을 하곤
한다.
 "음... 엄마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이가 없어.
지금이 좋아. 지금이 가장 감사하고, 평안하고, 너희들 더 크는 모습도 빨리 보고 싶고... 그래서 지금이 좋아."
작은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오니, 큰 녀석이 엄마 사인을 받아가야 하는 종이가 있다며 기다린다.
얼른 사인을 해주고, 큰 아이에게 몇 달 만에 문 앞
빅 허그로 배웅을 한다.
마지막 남편 출근길,
어제 남은 부침개를 안 넣고,도시락에 빵을 넣었냐고?집에서 내가 다 먹으려고 한다는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길래, 퇴근하고 와서 혼자 다 먹어로 종료.
남편까지 라이드 하고 돌아오니, 
내일이 금요일이란 사실이 완전 감사하게 느껴지는
한 주를 보내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9월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 한주가 좀 버거운 이유 중 하나는 새 생활 루틴이 만들어지기 전에 매일 말씀 성회를 참석하고 있다는 것. 남편도 함께 간다는 것.
아이들도 안 하는 도시락 투정을 하지만, 그래도 한 말씀을 듣는다는 것,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더라도, 말씀 안에 하나님을 향하는 방향을 같이 함이 감사다.
갈길이 멀지만, 한 곳을 바라봄에 소망이 있다.
 
첫날 (창세기 41장~52절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말씀을 들으며, 용서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본다.
나는 용서를 잘 못한다. 용서란 단어가 무의미하다.
용서라는 것이 마음의 상태를 우위에 놓아야 할 수 있다고 여기기에  할 수 있는 위치가 먼저이다. 그게 내가 정의한 용서의 순서.
그래서 그 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렵다.
용서 다음은 화해. 용서도 태도의 우위에서 시작하는데, 상대방도 비슷한 위치에 도달해  협력하는 과정에 이르러야 한다. 더욱 불가능.
그래서 용서가 가능하려면 내 마음의 완전한 우위
마치 요셉이 총리가 되고서야 가능한 최상의 마음.
온전히 가득 차고도 넘쳐 흘러 더이상 아무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의 충만함.
(창세기 45장 5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깨닫고 난 후에야 말할 수 있는 감정의 망각과 남은 흐릿한 기억 파편.
요셉이 그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 지음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나는 요셉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여전히 나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관계가 남아 있다. 그들을 위해 기도 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고,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므낫세의 마음으로, 에브라임
그 이름의 고백을 하고 싶다.
 
둘째 날 흔들리지 않는 믿음 (로마서 4장 18절~22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의 믿음... 순종할 수 없는 가운데 순종했을 때 기적을 경험하며 사는 삶.
성경을 읽으며 나는 어떤 인물의 어떤 성품을 닮아있는지 찾아가는데, 아브라함은 나와 제일 거리가 먼, 이해잘 안되는 인물로 느끼곤 했다.
나에게 순종이란, 요나 같다.
어쩔 수 없어 하긴 하는데, 기뻐하며 해 본 적이 없다. 죽지 못해 하는 마음.
하면서도 불평불만은 다하는...
그럼에도 또 하긴 다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싫었다.
세상엔 무서울 게 없이 굴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내가 싫어서
뒤틀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그저 감사로 기쁨으로 하나님 뜻대로 순종했다면, 지금은 깨달은 순종의 마음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 마음으로 말씀이 들렸다.
그럼 나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같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후회는 아니다. 반성이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주시는 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나에겐 그 마음을 알기 위해 이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더 이상 뒤를 돌아보는 삶이 아닌, 주님 앞에 지금을
사는 삶을 살고 있다.
 
셋째 날 하나님 나라가 내 삶에 온다(마가복음 1장 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회개란 내 자아가 원하는 삶을 살면서 뉘우치며 여전히 내 맘 데로 결정하는 모습이 아닌,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결정권을 넘겨 드리는 자세.
하나님... 이제라도 주님 주님 앞에 내 결정권을 내려놓을 수 있음이 감사입니다.
그 불평 가운데서도 주님을 두려워 했음이 은혜입니다.
주님, 이 모습 이대로 나를 사랑해 주심이 기쁨입니다.
아버지 앞에 온전히 순종하며 따라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넷째 날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사사기 6장 11절~16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나약한 기도온에게 나타나 큰 용사라 부르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이미 갖추어진 자가 아닌,
낮고 약한 자를 하나님의 드러남을 위해 부르신다는, 나약한 자가 하나님 앞에 한 발을 내딛는 용기를 낼 때,
주님의 역사하심을 나타내신다 말씀하셨다.
나는 기드온을 생각할 때, 그 끝없는 의심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주님의 싸인을 봐야하는 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늘 확인해야 하는 자.
두려움을 갖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로 보여졌다.
그의 나약함과 불안함이 나와 같다.
주님의 정확한 싸인이 없이는 나도 아무것도 하지도
않고, 시작도 않는 사람이기에, 그러나 주님은 이제
내가 그 한발 띠기를 원하고 계신단 마음을 주신다.
주님 부르심을 받은 자는 아니더라도,
하나님 인정받는 자로, 주님과 동행함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기원하시는 마음을 주신다.
특별한 소명이 아니어도, 매일 주님 앞에 엎드려,
사랑의 마음을 품고, 상처 나누기를 원하시는 마음을
알게 하신다.
큰 용사라 부르심 받진 않아도, 너와 함께 한다는 주님의 마음을 알기에, 나도 용기를 내려 한다.
(욥기 8장 7절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 심히 창대하리라)란 말씀이 떠오른다.
작은 것들이 쌓여 커다란 하나를 이루기까지,
그 큼이 되기까지 작은 것들이 모여지는 인고의 시간을 알기에 주님만 의지함이 필요하다.

다섯째 날 주권을 인정하는 기도(사무엘상 1장 10~11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가 인정이 되지 않는 삶은
결핍과 시기로 타인을 비교하며 자신의 단점만을 바라보기에 하나님을 주신 내 모습 이대로 먼저 인정하고,서원하면 주님이 알아서 해주시는 삶을 산다는 말씀.
나는 스스로 만든 높은 기준에 결핍을 만들고, 만족 할 수없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인간 관계 안에선 상대의 시기심을 먼저 느껴지다보니,
기본적 인간관계 신뢰감도 적고,
사람을 믿지도 않고, 내 자신도 믿지 않는다.
그런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
이 모습 이대로 지금까지 나와 동행하고 계신 주님을 알게 되었을때, 모든 것이 다 괜찮아졌다.
스스로 만족하지 않아도, 그 어떤 시기도 나에게
아무 상관이 없어졌다.
여전히 난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든 하고 싶고, 할 수 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갑니다.

아들아, 너는 어떤 마음으로 결심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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