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2004년 2월 22일 일기.
봄이 오면......
친구와 함께 책 한 권 손에 들고 작은 가방에 샌드위치 넣어
따스한 햇살 가득한 공원에 나가 여유를 만끽하고 싶다.
봄이 오면......
나풀나풀거리는 푸른 스카프에 어울리는 꽃무늬 블라우스 한벌 장만하고
살랑살랑 나부끼며 거닐고 싶다.
봄이 오면......
나른한 기분에 맞게 마음껏 늘어지도록 찬란한 햇볕 아래
슬그머니 낮잠 한번 자 보고 싶다.
봄이 오면......
또각또각 발걸음 소리조차 가벼운 분홍 구두 신고,
사람 많은 곳에서 나도 같이 바쁜 듯 걷고 싶다.
봄이 오면......
봄 내음 물씬 풍기는 노랑 프리지어 한 다발
아무 기대 없이 문득, 선물 받고 싶다.
봄이 오면......
내 입가에 밝은 미소 가득가득 머무르게 환하게 웃고 싶다.
봄이 오면...
봄이 오면...
봄이 오면......
그땐 날 이렇게 힘들게 한 지난 겨울은 잊어버리고 싶다.
2016년 2월 15일
아이의 6살 생일
1월부터 자기 생일을 카운트했는데, 오늘이 바로 D-day.
며칠 전부터 생일날 하고 싶은 리스트를 만들어가족에게 몇 번이나 말한다.
첫 번째 선물. 엄마, 아빠 하나씩 2개.
두 번째 아이스크림 케이크. 평소에 아이스크림을 잘 안주니,
생일날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실컷 먹고 싶단다.
세 번째 'Swiss chalet'라는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기.
키즈밀 식사 후 나오는 스키틀즈 캔디를 먹고 싶어서
네번짼 동생이 해야 하는 허그,뽀뽀
다섯번째, 엄마가 만든 생일 카드.
마지막으로 생일 풍선2개. 동생과 하나씩 나눠 가지기.
각각의 이유를 모두 지닌 바람이기에 다 들어준다고 했더니,
잠도 안 자고 새벽부터 일어났다.
생일이 그리 좋을까 싶지만, 지금이 아니면 이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신나고 기대하며 좋아하나 싶어 웃음이 난다.
계획은 자기가 세워 놓고, 과정은 서프라이즈로 해달라기에,
방문을 닫고, 남편과 둘째 녀석을 불러 카드를 만들고
카드에 한 줄 쓰려다 울컥한다.
이렇게 자라 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
어디로 튈지 몰라 고민스럽게 하던 럭비공 같던 이 아이.
그저 이 아이가 밝게 자라 주는 것이 고맙다.
큰 아이에겐 별로 너그럽지 못했다.
결혼 후 캐나다에서 낯선 환경에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육체적으로 전혀 여유가 없었다.
큰 아이를 낳은 직후 임신 중 미룬 치료를 받기 위해 산후조리도 없이 수술을 해서 몸은 더 약해졌다.
게다 시댁으로 생활 환경에 늘 문제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활발하고 기운이 센 에너자이져 큰 아이가 나에게 버거웠다.
내가 잘 소통할 수 없는 이곳에서 아이가 실수 할까? 늘 아이에게 예민했다.
조금만 여유가 있었어도 더 너그러웠을텐데......
그때의 엄마를 생각하니 정말 정말 미안해.
물론 여전히 너희에게 무서운 존재이고, 가끔 매도 들어야 하지만,
엄마는 너희를 생각하면 감사해.
오늘 엄마가 너에게 줄 카드를 적은건 잘한 일인것 같다.
엄마가 적은 생일 축하해 한마디에,
너에게 아주 많은 것이 고맙고, 미안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