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에서
2013년 3월 17일 일기.
이제 열둘을 세면
우리 모두 침묵하자.
잠깐 동안만 지구 위에 서서
어떤 언어로도 말하지 말자.
우리 단 일 초만이라도 멈추어
손도 움직이지 말자.
그렇게 하면 아주 색다른 순간이 될 것이다.
바쁜 움직임도 엔진 소리도 정지한 가운데
갑자기 밀려온 이 이상한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리라.
차가운 바다의 어부들도
더 이상 고래를 해치지 않으리라.
소금을 모으는 인부는
더 이상 자신의 상처 난 손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리라.
전쟁을 준비하는 자들도
가스 전쟁, 불 전쟁
생존자는 아무도 없고
승리의 깃발만 나부끼는
전쟁터에서 돌아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그들의 형제들과 나무 밑을 거닐며
더 이상 아무 짓도 하지 않으리라.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완벽한 정지 속에서
당황하지 말 것.
삶이란 바로 그러한 것
나는 죽음을 실은 트럭을 원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삶을
어디론가 몰고 가는 것에
그토록 열중하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잠시만이라도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다면
어쩌면 거대한 침묵이
이 슬픔을 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이 슬픔
죽음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이 슬픔을.
그리고 어쩌면 대지가
우리를 가르칠 수 있으리라.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이제 내가 열둘을 세리니
그대는 침묵하라.
그러면 나는 떠나리라.
--------------- 침묵 속에서 / Pablo Neruda ----------------
p.s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완벽한 정지 속에서
잠시의 평온함에 감사할 뿐.
그저 삶이란 바로 그러한 것.
2016년 3월 31일.
3월이 갔다.
조용히, 바쁘게 갔다.
아이들의 감기와 남편의 몸살, 그리고 몸의 생긴 결석으로,
한 달 내 주말마다 병원에 다녔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큰 환자 취급을 받은 사람은 나였다.
그렇게 3월을 집에서 쉬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어느 때보다 아이들과 집 안에 콕 박혀 있었다.
아이들도 이번엔 엄마가 아프다는 걸 알았는지,
Easter break를 맞아 학교도 가지 않는데, 고맙게도 조용히 놀아준다.
이제 두 녀석들이 마음도, 생각도 조금씩 커가는 게 느껴진다.
우리 집은 두 녀석 말을 빨리 시작했다.
첫째 아이는 무언가를 보고 상상으로 하는 말을 좋아하고,
둘째 아이는 들은 말을 자기 말로 다시 말하기를 좋아한다.
첫째 아이가 3살 때였다.
놀이터를 다녀오는 길
어느 콘도 주차장을 지나다가
주차장 입구 그림자를 보더니,
'쉿! 모두 조용히요!
조용히! 살금. 살금. 내려가요.'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란다.
종종 엉뚱한 소리도 잘했다.
왜? 썬(Sun)은 자꾸 자기만 따라오냐는 등,
문(Moon)은 집은 어딘데 깜깜해지면 나오냐는 등.
궁금한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아서,
엄마도 늘 상상하게 만드는 아이였다.
둘째는 지금 3살이다.
형아 때만큼 쉼 없이 엄마가 말해주지도 못하고,
형아 때만큼 밖에 나가서 활동을 자주 해주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 녀석은 혼자도 가만히 놀기를 잘한다.
그리고 종종 애 어른처럼 말하기를 잘한다.
혹 들판에 핀 민들레를 보면,
민들레는 엄마가 좋아하는 엄마 꽃이라 하고,
일하러 나가는 아빠에겐 매일 아침,
아빠! 꼭 조심히 운전하세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만히 웃음 나게 하는 아이이다.
3월이 갔다.
나의 3월이 그렇게 갔다.
이 한 달 아이들과 조용히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금 지루했고, 약간 피곤했고, 모두 아파 힘들었지만,
부산스러운 조용함이, 이 조잘거리는 고요함이 좋다.
나는 고요함이 주는 차분한 편안함을 좋아한다.
둘째가 6살이 될 때까진 여전히 완벽한 고요를 누릴 수 없겠지만,
지금 이 아이들이 내 옆에서 자라나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그리고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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