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는 한창 봄이라 거리에 벚꽃이 봉우리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다.
며칠 전 내 생일을 축하하며 남편이 백합을 한 다발을 사 왔다.
나는 백합을 싫어하는데, 큰 꽃잎도, 진한 향기도, 떨어지는 노란 가루도
좋아하지 않는 꽃을 굳이 고르면 그게 백합인데...
암튼 나는 그대로 백합을 얼른 가져가 반납하고 하얀 소국 한 다발로 꽃을 바꿔왔다.
남편 왈~ 백합이 너무 싱싱해서 골라 왔었는데...
나 왈~ 글게 생전 안 하던 행동을 하니 골라와도 참...
남편의 뜻밖의 선물이 고맙긴 했지만 좋아하지 않은 꽃으로 받고 싶진 않아서, 내가 좋아하는 걸로 바꿔올께하며 가져온 하얀 소국.
좀 유난스럽긴 해도 내가 좋아하는 게 딱인 것 같아
소국을 바라 볼때마다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하얀 꽃은 내 이름 뜻이라고 말해주니,
남편과 아이들이 입을 오므리며 오~~ 놀라워한다.
몰랐어. 몰랐어요... 그래... 모를 수밖에, 엄마가 언제 이름 뜻까지 말하며,
꽃 이야기를 나눌 그런 뿜뿜할 여유가 있었었냐...
지금이라도 이런 여유에 그저 감사할 뿐이지.

지금 난 작은 꽃 한 다발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큰 위로가 될 만큼, 마음이 무겁다.
이즘엔 맘 편히 넘어가지지 않은 사건? 사고 발생 시기로 올해는 그래도 그냥 지나가나 싶었는데
역시나 예고도 없이 지난 주 시아버지가 방문을 하셨다 전해 들었다.
보통의 가족이라면, 부모님이 오시고, 뵙고, 함께 하는게 너무나 당연하지만,
여전히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을 다시 접하니, 남편의 반응도 이제 달라졌다.
이번엔 본인이 먼저 아버지를 뵈지 않고 지나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한다.
해결 못할 말을 먼저 꺼낼 수가 없어 나도 조용하고,
모두의 불편함만 가득하다.
그저 늘 익숙해지던 상황에 손발 떨지 않고, 담담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까진 착한 아들만 하던 남편이 이제야 아버지 앞에 서려는 모습을 다행이라 해야 하나?
당연한 걸 하지 않는 자식의 마음도, 부모의 마음도
모두 힘든것을 알기에, 우리에게 시간을 더 지나,
이 모든 것들을 묵묵히 마주할 시간을 바라며
이 시간을 또 버텨야 하는 건지.
그저 하얀 작은 소국 한 다발로도 내 마음에 조금씩 기쁘게 채워지는 것처럼,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좀 전해지길 원하는 건데,,,
어려운 일이다. 늘 마음이라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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