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Episode 2

'애도' 충분한 필요의 시간

annelife 2024. 9. 18. 12:48

어머니의 기일이다.
미리 준비한 꽃다발과 꽃가위, 수건 등을 챙겨
남편과 길을 나섰다. 출근길을 좀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차가 막힌다. 묘지까지 차로 40분 정도 거리인데,
한 시간이 지나서도 이렇게 길이 막히니, 사는 동네만
돌아다녀 출근길 교통량에 너무 무지했나?
멈추고 서다를 반복하다 멀리 사이렌이 보인다.
사고가 났나보다.
하이웨이 2차선을 막아선 소방차와 경찰차가 보인다.
큰 사고였다. 차 한 대는 거의 완파된 걸 보니 누군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을지도 모르겠다.
심한 멀미가 난다. 요즘 분주했고, 차도 오래 타질 않다보니 차안에 오래 있었다고 몸이 힘들게 느낀다.
하이웨이라 그런지 공기도 나빠서 창문도 못열겠다.
남편이 내 얼굴을 보더니,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지
조금만 참으란다. 참아야지. 이 길을 뚫을 수도 없고, 그저 지나갈 때까지 참고 기다릴 수밖에……
그곳을 벗어나 묘지 근처에 오니 산 정상의 차가운
공기와 추위가 느껴진다. 혹시 몰라 스카프 하나를
챙겼는데 잘했다. 오한이 와서 얼른 어깨에 둘렀다.
가져온 수건으로 묘비를 닦고 사온 꽃을 두고, 잠시
기도를 한다.
옆에서 같이 기도하던 남편이 올해도 운다.
15년이 되어도 엄마의 죽음은 그에게 울음 버튼이다. 일찍 돌아가셔서 좋은 세상 못 보신 게 억울하다길래,
이 세상 오래 산다고 안 좋아. 오래 아프시며 고생하신
것보다 짧게 투병하시고 하늘나라 가신 게 복이야.
누가 잘한다고, 이 세상에 더 있고 싶으실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남편의 카톡 배경 사진은 10년이 넘게 “I Always Love Mom.”이었다.
이젠 카톡을 아예 없앤 지 몇 년 지났지만,
그 마음엔 그 말을 마지막에 못 한 것이 남았으리라.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시간에 남편이 어머니와 함께 하지 못함이 앙금처럼 남았으리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도 남편은 제대로 슬프지 못했다. 하루하루 바빴고, 정신 없었고, 말도 안 되는 상황들에 몇 년 힘들게 보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상황을 제대로 된 설명없이 그저 견디어야 했다.
그래서 나에겐 그 시간이 슬픔보단 분노로,
내 아이에겐 불안으로,남편에겐 슬픔을 참을 수밖에
없는 혼돈의 시간으로 지나가버렸다. 우린 그렇게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지났음에도 마음은 늘 그 자리 슬픔에 머무르나보다.
어머니 묘비를 닦다 묘비에 쓰인 글귀가 읽혔다.

"What though life conspire to cheat you”
                                    (Alexander Pushkin)      
What though life conspire to cheat you,
Do not sorrow or complain.
Lie still on the day of pain,
And the day of joy will greet you.
Hearts live in the coming day.
There's an end to passing sorrow.
Suddenly all flies away,
And delight returns tomorrow.

-어머니 묘비에 이 글이 있었네.
“엄마가 평소 자주 말하던 글이야.”
우리 어머니 그 화려한 외형과 달리
우울하고 가라앉은 분이셨네.
나와는 너무 다른 분이시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발견한 동질감에 어머니의 대한 짠함이 더한다.
나는 이제 오늘의 삶. 지금 이 순간의 삶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고 있는데…
우리 어머니도 감사의 오늘을 조금 더 누리셨으면,
남편의 마음이 조금 덜 슬퍼졌을까?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PS. 어머니 유언으로 남기신 이 성경 말씀에 위안을
얻는다. 어머니의 마지막은 오직 믿음 안에서의 삶으로 천국 가셨고, 말씀으로 자식들에게 남겨 주셨으니 그분의 자녀들도 결국엔 그 믿음 안에서 살리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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